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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해외에서 겪은 사건사고 경험담 공모전 수상작] 수기 부문 우수상 _ 죽을뻔한 몽골에서 살아돌아와 부부가 될 확률은?

  • 분류 홍보
  • 등록일 2026-08-03
  • 조회수 5


죽을뻔한 몽골에서 살아돌아와 부부가 될 확률은?

제6회 해외에서 겪은 사건사고 경험담 공모전 수기 부문 우수상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떴지만, 나는 차와 함께 계속해서 구르고 있었다. 5초 정도 흘렀을까 구르던 차가 멈추었고,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파악할 새도 없이 푸르공의 엔진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당장 이 차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몽골 내륙 한가운데에서 폭발한 차와 함께 한 줌의 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져나가려고 보니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사람의 엉덩이가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고, 나 또한 왼쪽 사람의 배 위에 이상한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서로가 뒤엉켜 있어서 각자의 힘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었기에 어쩌지 고민하던 찰나, 앞 차에 타고 있던 현지인이 한 사람씩 우리를 차 밖으로 꺼내 주었다.

2022년 8월 10일, 나에게 주는 20대의 마지막 생일 선물이자 도전으로 나는 계획에도 없던 몽골행을 택했다. 모르는 사람들과 팀을 꾸려 낯선 나라에 혼자 간다는 나를 걱정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만류와 잔소리를 뒤로한 채로 그렇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날아온 문자 한 통. ‘위급상황시 영사콜센터(+82-2-3210-0404) 영,중,일,프,러,스,베트남어 통역가능.무료전화앱 설치하세요.’ 이미 안전하게 마무리한 여러 차례의 해외여행 경험도 있었고, 현지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니 문자 내용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6박 8일 코스의 몽골 여행은 우리에게 사진에 담기지 않을 근사한 풍경과 현지인 및 동행들과 교류하며 얻은 잊지 못할 추억, 그리고 하루 3-8시간씩 푸르공을 타고 이동해 다니며 얻은 극심한 피로를 남겼다. 우리의 일정은 울란바토르를 시작으로 하르허링, 테르힝 차강호수, 홉스골, 장하이를 거쳐 마지막 지역인 볼강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던 중 현지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식곤증과 피로가 겹쳐 푸르공에서 우리 모두는 편안히 눈을 감고 쉬다가 잠이 들었다. 피곤한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가이드도, 운전기사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운전기사님의 말동무가 되었어야 했던 우리 나이 또래의 가이드는 조수석이 아닌 뒷자리에 몸을 실었고, 기사님은 졸음운전을 하셨다. 안타깝게도 앞차와 충돌 직전에 눈을 떠버린 기사님이 핸들을 재빠르게 틀었고, 7개의 짐가방과 성인 8명을 싣고 빠르게 달리던 푸르공은 중심축이 무너지며 여러 바퀴를 구른 후 잔뜩 찌그러진 채로 멈춰 섰다. 차 밖으로 ‘꺼내진’ 가이드를 포함한 일행들은 모두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넋을 잃고 있었다. 조수석에 있던 일행은 찌그러진 차에 몸이 낀 채로 남겨져 있었고, 뒷줄에 있던 일행은 차내 쇠 파이프에 정강이를 긁혀 무릎부터 발목까지 살이 찢겨 뼈가 그대로 보이는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때 정강이가 찢긴 일행이 정신을 차린 후 영사 콜센터의 연락처를 떠올렸고 바로 전화를 걸어 주몽골 한국 대사관과 연결이 되었다. 대사관에 사고 사실, 발생 위치와 이송될 병원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었고 병원에서 만나기로 한 후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방치되어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조수석에 끼어 있던 일행이 구조되었다. 그 후 약 1시간이 넘는 기다림 끝에 1차 앰뷸런스를 통해 중상을 입은 일행들과 통역을 위한 가이드가 먼저 울란바토르의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이 이송될 수 있었다.

통역할 사람 한 명 없이 후발대로 이송된 나와 나머지 일행 두 명은 작은 마을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던 나는 플라스틱 썰매에 태워져서 병원 안의 침대로 옮겨졌는데, 다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달라고 간호사들에게 영어로 요청했으나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필 휴대폰도 신호가 터지지 않아, 번역기의 힘도 빌릴 수 없었다. 의사소통을 포기한 채로 약 1시간을 그 병원에서 고통받고 기다리니 여행사 사장 내외가 우리를 보러 왔다. 그러면 뭐 하랴.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은 여전했고, 선발대로 출발한 우리들의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현지인들끼리의 잠깐의 의사소통 끝에 나는 또다시 썰매에 들려서 차에 태워졌고 여행사 사장 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밤 9시가 다 되어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나는 대사관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현지인 의사들과 문제없이 소통할 수 있었고, 빠르게 응급 처치 및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던 답답한 시간 끝에 드디어 한국인을 만나고, 심지어 현지인과 직접 소통해 주시니 더없이 기쁘고 안심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사관 직원분들은 선발대가 도착하기 전부터 병원에 오셔서 우리 일행들의 접수 및 빠른 처치에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조수석에 끼어있던 일행은 대퇴부부터 발가락뼈까지 모조리 골절되어 절대적으로 빠른 응급 처치가 필요했고, 정강이 살이 찢겨 있던 일행 또한 응급 봉합 수술이 필요했는데, 특히나 이 두 사람에게 대사관 직원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의사와의 상담 및 검사에 대사관 직원분께서 계속 동행하며 모든 진행 과정을 통역해 주셨다고 한다.

몽골 현지에 도착했을 때 받은 문자가 없었더라면, 교통사고 직후 일행이 영사 콜센터를 떠올리지 못했더라면, 몽골에서 근무하시는 대사관 직원분들이 없었더라면, 대사관 직원분들의 빠른 대처가 없었더라면... 짧은 시간 내에 우리에게 벌어진 많은 사건들 중 하나라도 없었더라면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교통사고 발생 직후 우리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감사히 느껴졌다. 몽골에서 대사관 직원분들의 도움을 받았던 경험은 우리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따스함을 심어준 아주 값진 경험으로 남아 있다. 머나먼 타지에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주몽골 한국대사관 직원분들 다시 한번 감사했습니다.

몽골 여행을 함께한 일행들과는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골절을 당한 일행은 들것에 실린 채로, 봉합 수술을 받은 일행과 나는 휠체어에 실린 채로 비행기에 태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귀국 후에 더욱 활발히 교류했다. 서로의 병원 검사 결과는 어떠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로 천천히 회복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어느새 8월이 지나 9월 추석이 되었고, 봉합수술을 받은 일행의 외할머니 댁이 나의 집 근처였던 관계로 연휴 기간 동안 만날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고 그 만남을 계기로 여러 차례 약속을 잡으며 서서히 가까워져갔다. 20대 후반 남녀의 우정은 자연스레 이성으로서의 호감으로 점차 변질되어 갔으며, 약 2년 반에 걸친 연애 끝에 우리는 2025년 5월 24일 결혼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결혼 1주년을 앞둔 부부로 함께 살고 있다. 머나먼 몽골에서 안전벨트도 없던 푸르공이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반나절만에 응급실로 옮겨지고,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는 현지 응급 봉합 수술을 받고 허벅지 근육이 파열되어 걷지도 못하고 살아 돌아온 두 사람이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 몽골 안전 여행 팁

  1. 대한민국 영사 콜센터 연락처(혹은 주몽골 한국대사관 연락처)를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위급상황 발생 시,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2. 투어 가이드의 자리는 반드시 조수석이어야 합니다. 일행을 이끄는 것 뿐만 아니라, 운전 기사님이 졸지 않도록 말동무가 되는 것도 가이드의 기본 역할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 사진 설명

#1. 우리가 타고 있던 푸르공. 우리는 차량이 전복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차 문을 통해 꺼내졌다.



#2. 1차로 옮겨졌던 작은 마을의 병원. 아직도 어떤 이유로 저곳에 갔었는지는 알 수 없다.



#3. 남편의 정강이 병원에서의 모습 & 현재 모습. 앰뷸런스에서는 식염수도 없이 상처 위에 거즈를 냅다 올려 지혈했고 현재도 선명하게 다리에 상처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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